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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모양금붕어 2025. 3. 5. 03:51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악은 매번 새로운 형태로 그 진부한 얼굴을 바꾸며 세간에 파장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한때 떠들썩했던 악행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쉽게 잊혀진다.

 

대략 오 년.

 

세간은 카마카리 소이치로라는 이름을 금세 잊을 것이다. 카마카리 이사나가 의학부를 졸업하고 실습을 마쳐 사회로 나갈 즈음이면, 부모의 사회적 허물은 그녀의 발목을 현실적으로 붙잡기 어려울 것이다. 그녀는 부모의 비참한 몰락을 목도했고, 그들의 진절머리나는 면모를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무엇을 잘할 자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의사의 길을 꿈꿨다.

그러니 그녀가 지금까지 늘어놓았던 다른 진로를 찾아야 할 이유들이란 결국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었다.

 

 

 

성격, 외모, 사고방식, 심지어 관심사 하나 비슷한 것 없이 하늘과 땅만큼 떨어진 후배였으나 성격, 외모, 사고방식, 심지어 관심사 하나 닮은 것 없이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후배였다. 하지만 기죠 아리히코는 그녀가 나열한 변명의 이유들을 내심 뼈저리게 이해하고 있었다. 긴 부연도, 설명을 위한 설득도 필요 없었다.

닮은 것이라곤 하나 없다고 여겼던 후배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곳에서 자신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카마카리 이사나가 고해한 한 짧은 단어에 함축된 스스로에 대한 의심은 그 또한 체험한 바 있는 감정이며 두려움이었다.

 

일전 카마카리 소이치로가 제 자식에게 속삭이던 '언젠가 자식의 몫이 될 빛'은 법적인, 물질적인 상속의 형태를 띄지 않아도 이사나라는, 아리히코라는 인물의 머리와 손을 내내 비추고 있었던 셈이다. 

타인을 짓밟아 이룬 부모의 성공은 두 자식이 누린 어린 시절의 윤택함의 토대이며, 자신들이 무엇을 딛고 성장해왔는지는 눈을 감아 외면하려 해도 눈꺼풀 사이로 따갑게 파고들어 결국은 모른 척할 수 없는 것이리라.

 

 

물려받는 것은 비단 물질뿐만이 아니다.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인가?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타인에게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가? 한 미성숙한 청소년을 이루는 관념적인 모든 조각 속에도, 보호자의 영향은 뚜렷하게 새겨진다.

인간의 사상과 도덕은 교육을 통해 수세기에 걸쳐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양육이라는 형태로 포장되어 유전되어 오지 않았던가? 카마카리 이사나와 기죠 아리히코 또한 인간의 오랜 습성으로부터 마냥 자유로울 수많은 없었다.

의사 부모를 동경하여 의사가 되기를 원했던 것도, 한때 대단한 기자였던 현 매스컴의 폐단을 쫓아 언론계를 택한 것도 그 흐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결과였을 것이다.

 

괴도단의 두 청소년은 아직 성년이 아니었다. 그러나 성년이 아니라는 것이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하기에 진실을 목도하고,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게 된 순간부터 그들은 내심 경계해왔다. 누가 지적하지 않아도, 다른 이가 구태여 상기시켜주지 않아도,

 

 

제가, 결국은 그 사람들의 아이고. 그게…”

 

 

자신을 빚어낸 이들의 악을 저도 모르는 사이 답습하는 행위를 말이다. 부모의 악행을 바로 옆에서 관람한 자녀는 내내 스스로를 윤리의 시험대에 올리고는 했다.

선대의 악함을 일말이라도 물려받은 자녀가 많은 이들을 도탄에 빠뜨린 제 부모와 동일한 길을 감히 걷고자 해도 되는 것인가? 그것이 도의적으로 옳은 일인가?

훗날 어떠한 이득을 눈 앞에 두었을 때, 자신은 제 부모와 같은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해요.”

 

 

기죠는 비스듬히 시선을 비켜 내린 후배가 다시 눈을 마주쳐줄 때까지 가만히 인내심을 지니고 기다렸다. 말 많은 이가 입을 다무니 일순 두 사람 사이에 적막이 내려앉는다.

참견하기에는 참으로 성가시고 어려운 걱정과 근심이다. 타인이 해결해줄 수 있는 영역 또한 아니다. 언젠가 제 스스로가 마음을 정하고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수밖에.

 

 

고생이 많아요.”

 

 

그러나 그 고민을 약간은 앞서 한 선배로서, 그리고 제 나름의 결론을 내린 채 살아가는 이로서. 기죠는 제가 어찌 할 수 없는 남의 두려움을 좌시하지 않고 공감을 표한다. 당신의 그 짐을 마음 깊이 알고 있으며, 가능한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싶다고. 그는 가볍게 손을 뻗어 후배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 훗날 어떠한 이득을 눈 앞에 두었을 때, 자신은 제 부모와 같은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의문에 기죠는 솔직하게 잘 모르겠다고 인정했다. 혈육이 물려준 부덕의 유산은 분명 두 사람 안에 존재한다. 이는 불변의 조건이다. 허나 유산이 아닌 본인이 가진 고유의 미지. 근 한 해간 두 사람이 페르소나라고 불린 그것이 말하지 않았던가?

불의를 불사를 수 있는 불을 주겠다고. 바름의 지표가 자신의 안에 존재한다고. 그는 연민을 알고 약자의 아픔을 자신의 것처럼 여기며, 더 나은 세상을 정의롭게 여겨 자신을 연료 삼을 수 있는 자라고 말이다.

아마도 이는 이사나의 세크메트 또한 같을 터였다. 카마카리라는 존재를 만들어낸 것은 그들이나 이사나라는 인물을 쌓아 나가는 것은 그녀 본인인 셈이었으니.

 

 

그리하여 단풍이 바닥에 전부 깔리기 시작한 늦가을. 첫눈이 내리는 초겨울, 그 계절 어느 사이의 날. 봄꽃과 함께 확신이 흩어지려던 때와는 달리, 아리히코는 제법 견고한 믿음과 자신감으로 이사나의 한 손을 쥐었다. 
뜻이 있다면 무서울 것 하나 없으며, 비슷한 행보를 함께 걷는 자로서 당신은 부모와는 다른 의사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짧은 학창 시절, 연이 닿는 한 몇 번이고 시간을 들여 이를 상기시켜주겠다며 그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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